[골목 이야기] 예지상가 이야기


B급사진 김영보가 2020년 촬영한 예지상가 계단

예지상가는 함경도 출신의 이북민 전영호의 가족이 광장시장의 포목점에서 일군 자산을 친구와 함께 투자해 상가로 올린 건물로, 본래는 두 채의 한옥이 자리해있던 공간이었다. 1972년 공사를 시작해 1974년 준공된 이 건물은 10층으로 올리려고 했던 본래 계획으로 인해 매우 건실하게 지어졌다고 한다. 사정 상 4층 건물에 옥탑방 정도만 올라갔지만, 시계골목일대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귀금속 전문 상가로 기술자라면 누구나 이곳에 들러보고, 또 점포를 열고자 하던 곳이 예지상가였다. 저렴한 월세을 내고 안정적인 상업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비슷한 조건의 다른 상가보다 권리금이 높았으며, 초창기 이곳에 자리 잡은 상공인들은 넉넉한 권리금을 목돈 삼아 종로 일대의 목 좋은 공간에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지상가는 엄밀하게 말하면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47번지에는 차의영이 이미 지어놓고 있던 1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그 위에 층을 올리고, 그 옆 48번지에 건물을 새로 지어 연결시킨 것이 지금의 모양새가 되었다.





준공 초기 예지상가는 주거지 인근에 위치한 복합 상가로서의 기능을 다 하였다. 1층에는 다방이, 2층에는 충신탕이라 불리는 목욕탕과 이발소가, 3층에는 숙박업소와 당구장이 있었다. 이후 80년대 중반에는 수익성이 높은 귀금속과 시계 판매 점포들이 비교적 임대료가 높았던 1층의 매대를 차지하고, 2층 ~ 4층에는 판매를 포함하여 시계 수리, 귀금속 세공, 다방 등 좀 더 다양한 분야들이 자리를 잡았다. 세공인과 귀금속 점포들이 밀집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귀금속 전문 상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예지상가의 기술자들은 하꼬방과 다름없는 비좁은 작업장에 3-4명이 밤을 세워가며, 혹은 그곳에서 먹고 자며 견습(미나라이) 혹은 꼬마 시절을 거쳐 기술자가 되었다. 이곳은 한 때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밀수품과 장물 유통지이기도 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는 상인들의 '고물 거래장부' 작성을 의무화하고 경찰이 이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도록 하였다.

세운스퀘어의 시계-귀금속 판매점 '세보'가 1990년대 초 예지동에서 사용하던 고물 거래장부

예지상가에는 예친회, 예지귀금속번영회 등 시계와 귀금속 관련 종사자들이 함께 협동하여 생업을 꾸려오던 공동체가 있었다. '예친회'를 비롯한 기술자와 상인들 사이의 모임들은 건물의 일상적인 관리와 갈등의 조정 등을 처리하고, 단합대회나 아유회, 경조사, 아이 출생 축하금 지급 등 크고 작은 공동체의 일들을 살뜰히 챙겼다. 거래장부를 점검하는 경찰의 불시검문에 상인들이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협력망을 구축했다.


충신탕

같은 주인이 예지동과 충신동 충신시장에 ‘충신탕’이라는 같은 이름의 목욕탕을 운영하였는데, 예지상가의 충신탕은 정리한 지 오래이지만 충신동에는 아직도 충신탕이 남아있다고 한다.


고물 거래장부

귀금속이나 시계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고물상영업법에 의한 허가증이 있어야 했고, 물건의 구입/판매 내역을 장부에 적어 장물 취득을 예방해야 했다. 귀금속 상점의 경우 부가가치세 감세의 목적으로 장부를 상대적으로 상세히 기록하였으나, 시계는 그러한 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쓰지 않거나 드문드문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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