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맵] 도심제조업 가로지르기 칼럼 ③시계수리 네트워크의 구성과 기능

3부 시계수리 네트워크의 구성과 기능


도구와 재료로 빼곡히 채워진 두 평 남짓한 시계골목의 작업장은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있다. 도구가 유난히 많은 선반 작업장의 벽면, 수만 개 줄코 부속들이 쌓여있는 땜 작업장의 바닥 한구석,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금가루를 모아둔 시야게 기술자의 쌀 포대. 이들은 자신의 공간을 ‘공장’ 혹은 ‘가게’라 칭하지만 나는 ‘작업장(workshop)’이라는 명칭을 고수한다. 시계 수리는 같은 기성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산업화 시대의 포드주의 생산 방식과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져오는 시계들은 제각기 다르고, 이에 따라 작업 내용도 천차만별로 다양해진다. 기술자는 개별적인 상황에 맞게 도구를 만들고 가공해서 주어진 과업을 창의적으로 해낸다. 이들은 가족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으로 작업장을 운영한다. 공간을 공유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책장과 도구는 스스로 관리하며, 임대료도 1/n이다. 작업장을 차리기 전 견습생 생활을 통해 ‘어깨너머 기술’을 습득하는 방식까지 고려하면, 이들의 정체성이 예술가에 가깝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치구’라고 불리는 시야게 작업장의 선반 작업 도구, 예지동 B골드(대표 설상수)

B급사진 이종구 2019


예지동 전일사 이병수의 작업장 ⓒB급사진 이종구 2019


작업장 운영의 모든 것을 홀로 오롯이 해내야 하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시계회사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센터는 부품 수급이 가능한 시계의 브랜드와 품목을 수리 가능한 범위로 한정해 놓고 매뉴얼까지 제공한다. 그러나 브랜드와 종류를 따지지 않고 수리 의뢰를 받는 골목의 기술자들은 이 모든 것을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부품 생산 분야는 민간에서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발전해온 기술 분야라 교과서조차 없다. 이때 기술자들이 이용할 수 있고 차별화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자원은 네트워크다. 혼자서는 안 되는 일도 함께 경험과 기술을 나누면 해결할 수 있다.

시계의 수리를 둘러싸고 종로-청계천 일대의 상공인들이 함께 구성하는 연결망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이다. 첫 번째는 동종업계 기술인들 간의 네트워크다. 기술을 전수하고 배우는 스승-제자나 가족,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같은 일을 하기에 서로 간의 실력과 분야의 차이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주어진 일감을 상대가 하면 내 벌이가 줄어드는 구조이기에 필연적으로 긴장이 흐르지만, 도구와 부품, 기술을 매개로 한 교류는 가장 빈번하다.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로부터 막힌 부분을 해결하고 미처 확보하지 못한 시계 부품을 구할 수 있다. 같은 작업장 동료들은 서로 필요한 도구를 주고받고, 위치를 확인하고, 그 상태에 대해 토론하면서 주된 의사소통을 한다. 이따금 꼭 필요하지만 내 작업장에 없는 설비는 예의상 푼돈을 주고서라도 다른 기술자로부터 빌려쓴다.

두 번째 차원의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업종에 종사하며 일감을 공유하는 단골 관계다. 수리 기술자와 유리 기술자와 같은 기술자-기술자의 연계가 될 수도 있고, 기술자와 중간상인, 기술자와 노점상과 같은 기술인-상인의 관계일 수도 있다. 예컨대 시계 수리를 하는 김에 유리를 교체할 수 있고, 유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시계의 분해-재조립 기술이 필요할 수 있는 것이다. 단골은 서로 이익과 책임을 주고받는 관계이기에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기술인의 단골은 신뢰가 높을수록 공임비에 있어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신뢰에 대한 대가, (진짜) 손님과의 문제가 발생했을 시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요구도 그만큼 높아진다. 단골 관계는 좁게는 골목 안에서부터 넓게는 전국, 국제적 단위까지 형성되어 있다.

세 번째 차원의 네트워크는 청계천 일대의 재료상, 철공소, 공업사와 같이 시계 외 분야 상공인들과의 연계다. 봉익동에서 시계 배터리와 외장부속을 구입하고, 을지로 필름집에서 문자판 도안을 떠 오며, 청계상가 인근 공업사에서 시계 부속의 가공에 필요한 정밀기기 등을 주문 제작한다. 특히 숙련 기술자는 시중에 나와있는 도구들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을 때, “남이 해 놓은 것은 손에 안 맞으니” 자신이 필요한 도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설계도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는데,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세운스퀘어 다보사의 이종태 씨가 2017년 금속가공 기술자와 함께 제작한 금속 시계 줄 해체 도구 바이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바이스의 설계와 제작은 1960년대부터 알고 지냈던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기술자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현재 이들은 구로공단, 안양천 일대 시흥 공구상가, 독산동, 문래동, 영등포, 부천 일대로 흩어졌다).

세운스퀘어 다보사 이종태씨가 금속가공기술자와

함께 설계도를 그려서 제작한 바이스 ⓒ전미영 2019


이러한 다차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종로 일대의 시계 수리는 개별적이면서 집합적으로 수행된다. 이러한 연결들은 기술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자산일 뿐 아니라 손님과 상인들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또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도심 공간의 기반시설(infrasturcture)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모든 시계는 언젠가 멈추기 마련이다. 배터리가 없어서, 태엽이 다 풀려서, 부품이 부러져서, 물이 들어가서 더는 움직이지 않고, 녹이 슬고, 외관이 망가진다. 고장 난 시계를 아주 쉽고 단순하게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 시계를 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복잡하고 어려운 선택, ‘수리’를 선택하였다면, 이 기반시설의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고장 난 시계들을 고칠 수 있게 하는 이 네트워크는, 고물의 재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적 기능을 수행한다고도 할 수 있다.



참고문헌


Lave, J.·Wenger, E., 2000[1998], 『상황학습』, 교우사, 전평국·박성선 역.



전미영|예지동 시계골목 현장 연구의 결과물로 『산업화 ‘너머’의 작업장 : 예지동 시계골목의 기술과 문화(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를 냈다. 사물과 공동체와 도시를 고치고(repair), 복원하고(restore), 혁신하는(renovate) 창의적 실험 및 기획을 꿈꾼다.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생동하는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시계 기술인들과 함께 공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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