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맵] 도심제조업 가로지르기 칼럼 ② 시계수리-부품 복원 기술의 가치와 분야

2부 시계수리-부품 복원 기술의 가치와 분야

금성사 박형군이 칼로 줄 부속을 연삭하는 모습 ⓒB급사진 이종구 2019

지난 백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시계, 특히 손목시계는 특권층만 소유할 수 있었던 사치품에서 사회생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 취향에 따라 쓰지 않기도 하는 기호품이 되었다. 다양한 물건들이 시간 지시 기능을 가지게 되면서 값싸고 흔한 시계가 넘쳐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예물로 고급 시계를 주고받으며, 백화점에서는 유명 시계 브랜드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번호표 거래가 성행 중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멋을 낼 수 있는 젊은 층의 패션 소품으로서도 인기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더는 생산되지 않는 시계 모델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 ‘빈티지’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시 거래된다. 없는 부품은 만들어서라도 끼워 넣고, 시야게(polishing)와 도금을 거쳐 광을 내고, 내 취향과 사이즈에 맞는 가죽 줄을 맞춤 주문하면 고물상에서 발견된 낡은 시계는 골동품이라는 귀한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쓰레기가 상품이 되는 기적은 상인의 예리한 식견과 물건을 고치는 기술자[1]의 뛰어난 솜씨가 빚어낸 결과다. 흔히 시계 수리(repair)를 생각할 때는, 고장 난 물건이 완벽하게 고쳐진 상태, 그 결과물을 놓고 성공과 실패 여부를 따지기 쉽다. 반면 시계를 복원(restore) 한다고 접근한다면, 작업에 관한 관심이 결과에서 과정으로 옮겨간다. 시계 무브먼트[2]를 통째로 새것으로 교체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 차단할 수 있으므로 수리의 결과는 완벽할 수 있다.

고장 난 부속을 다듬거나 금속 원재료를 손으로 갈고닦아서 제 부품과 같이 만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사람의 손으로 하는 금속의 절삭과 가공, 도금 작업이 반드시 기계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며, 숙련된 선반 기술자라 하더라도 컴퓨터로 찍어낸 것과 같은 정밀함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기술자가 눈으로 그 모양을 확인해 손과 도구로 작업하는 선반 기술은 그 실체만 존재한다면 작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단종된 모델이나 골동품 시계를 고칠 수 없는 서비스센터 기술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수리의 영역이다.



예지동 작업장의 수작업-복원 중심의 생산·수리 방식을 통칭하는 ‘시장기술’과 시계 회사들이 지향하는 자동화-교체 중심의 생산·수리 방식을 통칭하는 ‘공장기술’은 서로 다른 가치의 체제에서 경합한다고 할 수 있다. 아파두라이에 따르면 상품에 대한 지식은 그것이 속한 사회의 형태와 지식 분배의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또한 지식과 정보, 무지와 관련된 문제들은 상품의 생산과 소비라는 양 극단의 과정 뿐 아니라, 그것의 순환과 교환의 과정 그 자체를 특징짓는다. 서로 다른 제도와 문화적 조건 속에서 생산 및 유통되는 물건들은 동일한 유형의 상품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상품 경로를 갖는다(Appadurai 1986: 41-43).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고쳐지는 시계들은 대부분 모델의 이름만 들으면 어떤 시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고, 그 가치 또한 ‘명품 시계’라는 범위 안에서 순위가 매겨져 있다. 이들의 정보는 인터넷이나 매장에서 책정하는 새 물건 뿐 아니라 마니아 커뮤니티에서 거래하는 중고 매물의 가격, 그리고 그 변동의 추이까지도 널리 공유된다. 시계의 생산 과정(국적)과 기능, 진품과 가품의 감별법, 소장 가치 등의 정보(향후에 가격이 더 오르는지, 오른다면 얼마나 오르는지의 여부)는 명품 시계를 적어도 하나라도 소유하고 거래하는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가치의 체제다. 그리고 이들이 기술자들에게 원하는 수리 작업의 결과물은 마치 새 상품과 같을 수 있는 기술적 완벽함, 그리고 시계의 구성품과 수리 과정에서 외부의 것, 즉 순정품이 아닌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는 ‘정상적이고 순수한’ 상태다. 이들은 기술자의 수리 작업을 상품화된 서비스로 간주하고, 이들이 받는 수리를 ‘서비스’ 상품의 차원에서 엄격히 평가한다.


한미사 함영기가 납땜을 하는 모습 ⓒB급사진 이종구 2019


반면 예지동에 주로 의뢰되는 시계 수리 작업은 좀 더 복합적인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시계의 가치를 유지시키거나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업에 관한 것이다. 시계가 본래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내버려 두거나 물질에 가하는 자극을 최소화하여 그 상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복원해야 한다. 간단한 세척 혹은 부품의 경미한 일부만 수리해서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혹은, 어떤 시계는 광범위한 조정을 통해 역사적 가치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복원을 진행한다. 시계의 중요한 외관과 내부 구조를 변형시킬 때, 다른 시계의 부속이나 디자인이 적극적으로 응용된다.

기술자가 자동차를 복원하는 작업에 대해 “혼종성의 축제”라고 표현한 스펠만의 관찰처럼(Spelman 2002: 25), 수리 과정에서 보이는 ‘다양성과 혼종성’은 예지골목의 손님들이 시계 수리에 단순한 서비스 상품의 소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시계 수리 문화의 두 번째 유형, 즉 여가활동으로서의 문화적 실천의 측면과 관련된다. 자신이 직접 시계를 선택해 가치 부여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작업장으로 직접 들고 가 의뢰하는 과정 그 자체가 ‘고치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계를 고친다는 것은, 사람들이 시계의 기계적 구조와 디자인을 즐길 수 있는 문화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중간 상인들이 고장 난 시계를 예지동에 맡기면서 ‘새 시계 하나를 새로 만드는 기분’을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존과는 다른 색깔의 문자판, 바늘, 무브먼트 장치를 부착하면서 새로운 아름다움, 기능을 창출하려고 하는 중간 상인과 손님들의 요청은 기술자들의 작업장을 더욱 빛낸다. 시계 애호가들은 “잘 맞지 않아 조정해 줘야 하는 시계가 더 매력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때에 맞춰 태엽을 감아주고,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잦은 고장을 감수하는, 고전적이지만 불편한 물질생활의 양식 그 자체를 즐기는 이들은 주말이면 황학동에서 골라놓은 시계들을 예지동으로 가져와 이것저것 바꾸어보면서 새로운 시계를 만든다. 이를 두고 일종의 ‘메이커 문화’를 즐긴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B골드에서 작업이 막 끝난 시계 케이스와 시야게 기술자 설상수의 손 ⓒB급사진 이종구 2019



참고문헌


Appadurai, A., 1986, “Introduction: Commodities and the politics of value,” The Social Life of Things: Commodities in Cultural Perspective (pp. 3-63).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ennett, R., 2010[2008], 『장인: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21세기 북스, 김홍식 옮김.

Spelman, E, 2002, Repair: The impulse to restore in a fragile world, Beacon Press: Boston.


각주


[1] 예지동 시계골목에는 부품 복원이라는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시계를 수리하는 잔뼈가 굵은 기술자들이 모여있다. 시계 마니아들은 기술자 스스로의 손과 머리로 뚝딱뚝딱, 손톱보다 작은 시계 부품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기술을 ‘시장 기술’이라 부른다. “시계이기만 하면, 일단 가져오면 다 된다”는 예지동 시계골목의 전설은 10여 개로 분화된 시계 부위별 기술자들이 자신의 기술 분야를 특화-심화시키려 노력한 결과다. 유리, 고무링, 바네보, 용두, 케이스, 바늘, 줄, 문자판, 시계 뒷빽, 기계(무브먼트)는 시계를 이루는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부위로서, 시계를 ‘아는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잡혀있는 체계다. 이에 따라 수리(기계), 선반, 유리, 문자판, 줄-땜, 가죽 줄 제작, 시야게-도금, 부품 공급, 케이스 변형, 레이저 각인, 특수시계 제작의 업종이 예지동과 세운스퀘어, 봉익동 골목 구석구석에 분포한다.

[2] 기계식 시계에서 시계에 구동을 책임지는 핵심 장치로서, 시계 외장을 제외한 몸체 부분을 의미한다.



전미영|예지동 시계골목 현장 연구의 결과물로 『산업화 ‘너머’의 작업장 : 예지동 시계골목의 기술과 문화(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를 냈다. 사물과 공동체와 도시를 고치고(repair), 복원하고(restore), 혁신하는(renovate) 창의적 실험 및 기획을 꿈꾼다.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생동하는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시계 기술인들과 함께 공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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