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기술의 재발견] 세월의 색에 대하여 - 이다희 기술전수생

최종 수정일: 1월 11일


학생 때 왔던 시계골목에 돌아오다

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지동에 위치한 시계 골목을 한 번쯤 들어보거나 가봤을 것이다. 나 또한 시계주얼리학과 전공으로 시계 제작에 있어 한창 예지동 일대를 누비며 장인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곤 하였다.


지난 10월, 나는 ‘다시세운주민공모사업’의 Restore Project, 브리콜라주 세미나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어 또 한번 시계 골목에 발을 딛었고, 폴리싱 기술과 문자판 복원 기술을 현장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문자판 기술이 현존하는 시계 기술 중 가장 생소하고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어떠한 작업을 하고 계실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 기회로 인해 5년간의 시계 세일즈직을 멈추고 현재 ‘예탑’의 오석영 선생님 곁에서 문자판 복원 기술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문자판 기술: 시계 성형외과

기존의 모습 그대로 인덱스를 포함하여 재생 및 복원시킨 문자판


시계 기술에 있어 폴리싱, 유리, 부품 제작, 수리 등이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자판 복원은 아마도 조금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문자판 복원이란 시계를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성형외과 같은 곳이다. 시계의 얼굴이라 불리우는 다이얼, 그 위의 인덱스와 핸즈를 포함하여 노후된 것들을 재생시키며, 원하는 색을 넣고 원하는 문구를 추가하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읽히기엔 간단한 작업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작업물에 스무 가지의 가까운 공정, 그리고 평균 4-5시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기술 작업이다. 그 공정에는 갖가지의 용액을 거쳐 새것으로 재생시키고, 폴리싱 과정을 거쳐 사포와 기계를 이용하여 다이얼에 결을 내어 그 위에 원하는 칼라를 제조하여 칠한다. 그 후 로고 및 문구, 야광을 찍어내어 재생시킨 인덱스와 핸즈를 다이얼에 조립하여 마무리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들을 거쳐 도출된 결과물은 세월의 색을 거두고 색다른 모습으로 시계 주인의 품에 안기게 된다. 긴 시간 공들여 낡은 시계가 완전히 새것이 되어 짠하고 나타나면 작업해준 사람도, 시계 주인도 모두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문자판 재생 및 복원은 그러한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기술이다.



기술 전수에 대한 어려움과 가능성


시계/공구와 같은 기술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이곳의 장인분들은 기술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어 한숨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 골목의 재개발을 앞두고 기술을 이어주지 못하고 떠나시는 장인분들의 평생을 일궈온 작업물과 기술들이 서서히 단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현재 시계/공구와 같은 기술은 수십 년을 하고 계신 장인분들이 대다수지만 이제는 젊은 기술인이 필요하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러한 세밀한 작업을 다루기에 젊은 기술인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젊은 기술인들이 장인분들의 기술을 이어받아 필수 과정은 유지시키되,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일의 능률을 높여야 한다. 수십 가지의 공정에서 일부 과정을 단축시키면 신속함과 정확성이 높아지며, 이 과정을 통해 훨씬 빠르게 결과물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식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별한 자원이 없는 나라로 오늘날 세계 상위권의 무역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기술이었다. 기술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이며, 기술을 익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간다면 사업적으로도 파고들 수 있고, 문화적으로도 지킬 수 있다.

기술을 새로이 익힌다는 것은 생각보다 실천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나 역시 꾸준히 하던 일을 그만두고 현재 기술 익히는 것에 몰두 중이지만 종종 현실의 벽에 부딪혀 끝없이 고뇌를 반복한다. 그만큼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았을 때 결국에는 값을 매길 수도 없는 평생의 기술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시계 및 공구 기술을 배우는 것에 있어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짧은 글을 읽고 조금 더 용기낼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세월의 색을 새기다

7년 전, 처음 이 곳 발을 내딛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좁고 허름한 골목 사이로 빽빽이 줄 지어 있는 시계 상가들, 그 안에 주물, 폴리싱, 캐드, 수리, 복원, 유리 등 시계에 필요한 모든 공정의 각각의 장인분들이 골목의 활기를 더해가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내가 있는 예지상가를 포함하여 이곳은 이제 본격적으로 재개발을 앞두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더 이상 골목의 풍경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복원시키지 못할 예지 시계골목의 세월의 색은 평생 마음 속에 짙게 남겨지게 될 것이다.


이다희 ㅣ 기술 전수생은 동서울대학교 시계주얼리학과 졸업 후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로저 드뷔에서 전문 셀러로 활동했다. 주민공모사업 ‘시계기술의 재발견’ 프로그램을 통해 손으로 직접 부품을 만들고 복원해내는 기술 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계 기술 영역에 대한 경험을 확장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지난 11월부터 평일 오후에 예탑 문자판에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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