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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맵] 도심제조업 가로지르기 칼럼 ⓛ 시계골목 이야기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1일

1부 시계골목 이야기

시계골목 전경 ⓒ B급사진 남형진 2019


예지동 시계골목은 얼마 전 이사를 나간 종로 4가의 신한은행 오른 편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중심으로, 시계를 고치고 거래하는 기술인과 상인들이 모여있는 장소다. 해당 지역은 시계를 전문적으로 유통하고 수리하는 상업 공간으로서 ‘시계골목’이라는 상징적 지명이 지어졌다. 한국전쟁 전까지는 배오개 장이라고도 불렸던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과 그 가족이 주로 거주하던 주거지였다.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는 시장 인근에 있으면서도 집값이 저렴한 이곳의 낡은 한옥들 사이사이에 이북민과 이농민 가족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이전부터 이곳 큰길가에서 시계-귀금속 거래를 하던 중간상인들이 노점과 점포의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 ‘시장’이라 부를만한 경관이 만들어졌고, 주거지에서 상업공간으로서의 공간 조정이 본격화됐다. 이곳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던 예지동 토박이들은 방문객들로 복잡해서 살 수가 없어서, 그리고 높아진 땅값으로 서울 변두리에 더 큰 집을 사느라고 뿔뿔이 흩어졌다. 종로를 주름잡던 정치 깡패 이정재의 건물에는 삼계탕집이, 예지동 큰 부잣집이라고 알려진 수원 차 씨네 백 칸 한옥에는 예지상가가,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짐을 풀고 밀수품을 보관하며 숙식하던 77여관과 중앙여관의 좁은 방에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세공인의 작업장들이 있다. 70여 년 전 안동에서 상경해 시계를 사고 팔면서 가정을 꾸려온 부부가 이북민 주인으로부터 인수받아 가꿔온 ‘옛날집(원조함흥냉면)’은, 종로 동원예식장과 고려예식장의 인기 있는 회로연 장소이기도 했다. 밀수품, 미군부대 반출품, 고물이 활발히 유통되는 청계천 공업지대의 특성과 포목점을 중심으로 예물을 장만하던 상점이 밀집한 동대문시장의 특성, 귀금속과 같이 값비싼 장신구가 거래되던 종로의 상권을 중첩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계골목은 느린 발걸음으로 채 5분도 안 되어 한바퀴 돌 수 있는 작은 범위이지만, 전후 폐허더미 위에서 기술과 좌판 하나를 가지고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 먹고 잘살게 되었던 산업화시대의 열망과 역사가 여실히 녹아있는 곳이다.

골목 어귀의 공중에 설치된 시계골목 간판과 대형시계, 그리고 나란히 늘어선 노점들은 이곳의 독특한 경관을 구성하는 물적 구조다. 시계는 하나의 사물이지만 유리, 무브먼트(기계식 혹은 전자식), 케이스, 줄, 문자판 등 주요 부속들의 조립품으로서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도 분업화되어 있다. 그러나 시계를 분해하고 주유과정을 거쳐서 재조립하는 과정 자체가 숙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에, 외장부속(케이스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작업은 수리 기술자를 매개로 하여 진행된다. 노점 상인들은 시계와 관련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시계골목의 전문 분야별 기술자들과 손님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배터리 교체 등 간단한 작업을 손님이 보는 바로 앞, 즉석에서 처리한다.

이러한 노점의 존재는 세밀한 작업에 몰두하며 ‘기술’ 영역의 전문 수리를 해내는 기술자들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부담을 덜어준다. 예지동에서 수행하는 수리(repair)는 제한된 종류의 상품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작업도 아니고, 새 부품을 풍부하게 갖추어놓고 단순 교체만 하는 시계 회사들의 서비스 센터와도 차별화된다. 손님이 가져오는 제각기 다른 종류와 상태의 시계에 맞춤형으로 부품 자체를 복원하는 수공예 작업의 특성상 손님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독립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공간의 확보다. 따라서 시계의 성상과 구조를 잘 알기 때문에 가격으로 시비를 가를 일 없이 솔직하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중간상인, 노점상들은 기술자들이 “시계뿐 아니라 손님까지 고쳐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훌륭한 협업자다. 이러한 상호보완 관계는 서로를 “도와주는 사람”이라 칭하는 시계골목 상공인들의 수리 네트워크를 지지하는 견고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전미영|예지동 시계골목 현장 연구의 결과물로 『산업화 ‘너머’의 작업장 : 예지동 시계골목의 기술과 문화(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를 냈다. 사물과 공동체와 도시를 고치고(repair), 복원하고(restore), 혁신하는(renovate) 창의적 실험 및 기획을 꿈꾼다.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생동하는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시계 기술인들과 함께 공유해왔다.


원문링크: https://map.sewoon.org/?post=1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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